3월 말 집에 벽돌이 조금 있어서 그 벽돌을 활용해 대문 옆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꽃 전용 화단이었다. 겨울 동안 실내 화분에서 키웠던 꽃들도 옮겨 심어주고 또 새로 구입하거나 파종하는 꽃들이 있으면 함께 심어줄 요량으로 만든 공간이었다. 처음 만들 때에는 먼저 키우고 있던 스위트 알리숨과 해바라기를 옮겨 심어 주었고 또 그때쯤 화훼 농가에서 구입한 종이꽃, 제라늄 랜디, 라넌큘러스, 유럽 봄맞이꽃, 데이지를 함께 심어 주었다. 서로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며 알록달록하게 꽃밭을 채워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작은 꽃밭 만들기 - 스위트 알리숨이 점령해버린 꽃밭 근황 / 꽃밭 만들기 한 달 반 경과
처음에는 자리가 좀 휑했다. 한포기씩만 심다 보니 그랬기도 했고 또 식물들이 노지에 적응하면서 포기를 늘려가며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시멘트 바닥에 별 돌 3장 높이로 쌓은 화단이다 보니 흙이 깊지 않아서 근처에 자라는 대나무 잎으로 화단 위를 덮어 주었다. 이렇게 멀칭을 해 주면 흙이 금방 마르지 않아서 좋다.
꽃밭을 만든 처음에는 단연 라넌큘러스가 시선을 압도했다. 심어준 꽃들 중 키가 제일 크기도 했고 꽃도 제일 크며 색상도 눈에 확 띄는 분홍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꽃밭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뒤, 꽃밭은 알리숨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스위트 알리숨인데 알리숨이 원래 이렇게 경쟁력 있는 식물이었나 싶을 정도로 화단 구석구석을 덮어가며 자랐다. 굳이 멀칭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 심어줄 때에도 포기가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스위트 알리숨만 잘 자란 것일까? 조금 멀리서 보면 화단에 스위트 알리숨만 심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느새 스위트 알리숨 전용 화단이 되어버린 꽃밭. 원래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서로 다른색의 꽃들이 적당히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며 자라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데 스위트 알리숨의 번식력을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작년에 채소밭에 심어 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보라색 꽃이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는 하다. 우리 엄마도 이 보라색 꽃이 너무 예쁘다며 심고 싶다고 하셔서 지금 또 새로 알리숨 씨앗을 모종 포트에 뿌려 키우는 중이다.
스위트 알리숨이 화단을 뒤덮어 좋은 점이 있다. 일단 화단 근처에 있으면 스위트 알리숨의 달콤한 향기가 난다. 바람이 불 때나 비가 올 때에는 그 향기가 더욱 선명해진다. 향기를 좋아하는 벌레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스위트 알리숨 덕분에 찾아온 벌레들이 옆에 있는 텃밭 작물들의 수분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위트 알리숨에 가려진 다른 꽃들의 근황]
1. 데이지
붉은 꽃이 인상적이어서 구입한 데이지였고 이 아이가 텃밭의 포인트가 되어주길 바랬는데 지금은 알리숨 사이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데이지는 한 포기만 심어두면 포기가 자라서 금방 주변을 채워가는 아이인데 이보다 야리야리한 스위트 알리숨에 밀려서 화단을 미처 장악하지는 못했다. 키가 더 자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키가 많이 안 자라서 알리숨을 들춰내야 겨우 보이는 정도이다. 그래도 다행히 햇빛은 닿고 있는지 죽지 않고 조금씩 꽃송이를 늘려가고 있다. 조금 더 분발해 주었으면 좋겠다.
2. 제라늄 랜디(에인절 아이즈 오렌지) & 차이브
제라늄 랜디는 화분에서 키울까 하다가 꽃이 예뻐서 화단에 심은 아이이다. 연분홍색의 꽃이 참 예쁜데 지금은 가까이 가 봐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랜디 제라늄은 보통 포복성으로 아이비처럼 땅을 기어가며 자란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직립성으로 자란다. 랜디 중에 예외로 직립성으로 자라는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 아이인가 보다. 이름은 엔젤 아이즈 오렌지인데 오렌지 색보다는 조금 더 분홍에 가까운 색을 보이고 있다.
옆에 차이브도 함께 심어 주었는데 포기 번식은커녕 상태 유지 중이다. 아직 1년생이라 포기가 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부추처럼 잘라 주어야 하는데 아직 잘라주지 않고 키워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차이브는 좀 더 관찰이 필요하다.
3. 안개꽃
화단을 만든 뒤 한 2주 정도 지나서 안개꽃을 심어 주었다. 안개꽃을 계속 키우고 싶었는데 옮겨심기만 하면 말라죽던 안개꽃이 이번에는 꽤 잘 자라고 있다. 햇빛이 잘 들지만 한낮에는 주변에 키가 큰 식물들에 가려져 그늘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 원래는 안개꽃이 스위트 알리숨보다 키가 조금 더 큰데 아직은 그렇지 않아서 잘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올해는 안개꽃이 죽지 않고 자라고 있는 중이라 기쁨이 더 크다.
4. 종이꽃(로단세)
가장자리에 심어준 로단세 역시 스위트 알리숨에 가려지긴 했지만 죽지 않고 조금씩 세를 늘려가며 자라고 있다. 로단세는 종이꽃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생화를 만져보면 종이 같이 바스락 거리는 질감이 느껴진다. 꽃잎 자체에 수분감이 없달까. 그래서인지 종이꽃은 말리면 그래도 드라이플라워가 되는데 생화일 때와 색감의 차이가 거의 없다. 드라이플라워인지 생화인지는 줄기를 봐야 알 정도로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포기에서 굉장히 많은 꽃송이들이 달리기 때문에 따로 작은 포트에 두고 키워도 좋을 것 같은 꽃이다.
화단을 만들고 한 달 정도 지날 쯤에는 그래도 다른 꽃들이 조금씩은 보였었는데 지금은 스위트 알리숨이 차지해버린 화단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모두 죽지 않고 자라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스위트 알리숨은 가을까지 중간중간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데 혹시나 중간에 시드는 꽃들이 있거나 빈자리가 생기면 그곳에 천일홍을 심어 주어야겠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을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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