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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읽고, 쓰다/대만 여행 에세이

31. 할머니의 마음

by ▽_ 2019. 1. 28.

우라이에서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시외를 이동하는 버스지만 좌석이 지정 되어 있지 않은, 그냥 일반 시내 버스같은 좌석이라 선착순으로 자리애 앉는 것이다. 다행히 정류장에 도착 했을 떄 사람이 많지 않아 앞 줄에 서서 버스를 기다릴 수 있었다. 

십여분이 지나 버스가 도착했고 나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라이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리기 떄문에 서서 가면 피곤해서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는 출발 시간이 될 떄 까지 정류장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출발을 몇 분 앞두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 타기 시작했다. 이미 버스는 좌석이 만석이라 늦게 온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했다. 그런데 그 중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동방 예의지국출신의 젊은이는 이를 그냥 무시하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 온다면 마음 한쪽이 쿡쿡 쑤실 테니까.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젊은 내가 서서 가는게 낫지'라는 생각에 일어나 할머니를 부르고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 이렇게 가는 내내 할머니와의 대화가 시작 되었다. 

-어디서 왔어?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외국인이야?진짜? 대만에는 무슨 일로 온거야? 

-여행하러 왔어요

-어디까지 가는거야? 

-중정기념관까지 가요

-오 그래? 나도 거기까지 가는데, 나 내릴 떄 같이 내리면 되겠다. 

이런 식의 무난한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중국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할머니의 걱정 어린 질문에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도 있었다. 

-중정기념관에 왜 가는거야? 군인이야?

-네? (못 알아들음)

-군인이냐고 (난 외국인인데 왠 군인?) 죄인이요( 못알아들음)

-아니 군-인, 군-인 이냐고

-아니요 저는 외국인이고 그냥 여행 중이에요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다시 타는 곳이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리시며 나한테도 빨리 내리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

우라에에서 타이베이 시내를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한 번에 버스를 타고 가는 법. 중간에 내려서 전철로 갈아 타서 가는 법 등. 중간에 내려서 전철로 갈아타는 것이 조금 빠르기도 하고 우라이 버스 노선이 구석 구석을 다니는 것이 아니기 떄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디엔 정류장에서 전철로 갈아탄다. 하지만 나는 버스로 계속 갈 예정이였다. 버스를 타고 시내 구경 하는 것도 좋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센트럴 역까지 가서 탔지만 내 숙소 근처에도 승 하차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환승역에서 내리시더니 그 내린 문 앞에서 나보고 빨리 내리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 버스는 손님 한명(...나?)이 내리지 않아 출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빨리 내려!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 아니에요! 할머니 저는 여기서 계속 가면 되요

-빨리 내려 버스 출발한단 말이야. 빨리!!

-할머니의 다급한 손짓에 버스는 출발을 하지 못했으며 주변에 정류장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까지 가세해서 나보고 내리라고 거의 외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꼭 내려야 할 분위기....

-이거 중정기념관 가는 버스 아니에요?

옆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이상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손사래를 하며 

-아니에요. 저는 이거 타고 가면 되요. 그냥 가세요

라고 버스 안에서, 할머니는 버스 밖에서 서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가 할머니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이 버스 중정 기념관 간다고. 저 친구가 길을 아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제서야 할머니는

-아 그래?

라고 한마디 하시며 정말 쿨하게 나보고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를 해 주시고는 돌아서셨다. 젊은 외국인이 호자 와서 장거리 버스를 타니까 너무 걱정 되셨나보다. 네이티브처럼 술술 말한다면 걱정이 덜 될텐데 더듬 더듬 말 하는게 퍽이나 걱정스러우셨나보다. 

이렇게 한시간 같았던 몇분이 지나고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순간.

여해을 한 후에는 그곳에서 보았던 것. 먹었던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지만 그 풍경도, 그 맛들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물론 풍경이야 사진으로 남지만. 

그런데 사람의 기억은 좀처럼 흐려지지 않는다. 대만을 다녀온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대만에서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 자전거 앞에서 만난 청년, 우라이 꼬치집 사장님, 버스에서 할머니와 했던 말과 그떄의 상황들이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야시장에서 감탄을 하며 먹었던 간식들의 맛이 '맛있었다'라는 획일적인 기억 말고는 남아있지 않는것과 대조적이다. 

이전에 여행에서는 사람들과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우리끼리 어울리기도 했고 어딜가나 데이터를 사용해 그 자리에서 즉시 검색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선뜻 무엇을 물어 볼 일이 없었다. 무언가를 주문하거나 어디에 입장을 할때 하는 인사말 정도가 다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다. 손에 인터넷이 되는 휴대전화 대신 지도를 들고 여행 했기 때문이였다. 첫날 SIM카드를 구매 했다면 내 성격상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물어보지 않고 혼자 찾아가며 혼자 해결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전 여행들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고 도움을 많이 받은 여행이렸기 때문에 대만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정말 '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여행' 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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