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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읽고, 쓰다/일상 생각

[2017 대만 여행기] 완벽한 여행의 완성

by ▽_ 2019. 1. 22.

[2017 대만 여행기] 완벽한 여행의 완성


작년 이맘 때퇴사하기 한 달 전회사도 싫고 무기력함과 대책 없는 안일함에 지쳐가고 있었다그러다 덜컥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 버렸다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출국 일주일 전 메일이 왔다때가 되었다면서.

내가 대만 비행기 표를 끊어 놓고 있었지!’

부랴부랴 대만에서 지낼 숙소만 예약했는데 벌써 출국일이 되었다이렇게 시작된 아날로그 혼자 여행

사실 이전에 이곳 저 곳 많이 돌아 다녔지만 출장을 비롯해 대부분이 을 하러 다닌 것이었고 놀러간다고 해도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라는 사실이 나에게 묘한 설렘을 주었다본래의 내 성격이라면 일정이며 모든 상황을 다 계획하고 어느 교통수단으로 이동 할 것인지 정한 후 만들어 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맞다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 했으니까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으로 채워진 완벽한 여행!

행 첫날자정에 출발해서 새벽 두시에 대만으로 가는 일정 이였는데 비행기 표를 프린트 해 가지 않았다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가서 티켓팅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근처에 프린트 할 만 한 곳이 없었고 자정이라 문을 열지도 않았다.

아 평소대로 하지뭘 이렇게 준비도 안하고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신기한 것은 보통 내가 뭔가를 준비 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짜증이 많이 나는데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짜증은 커녕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오히려 내가 계획하지 않고 무언가 완벽히 준비하지 않고도 이 여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조금 흥분했다프론트 앞에서 사정을 설명하였더니 다행히 친절한 직원 분이 주민등록 번호로 조회하여 무사히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작년 대만을 갈 당시에는 대만 택시기사 사건으로 시끌시끌했다대만의 택시기사가 한국 여행자들에게 약이 든 음료를 건네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대만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가면서 기사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기사 아저씨가 대만은 친절한 나라다비록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해주시고 숙소까지 친절히 태워 주셨다또한 내릴 때 기분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도 해 주셨다여행 첫날 밤 행운의 부적을 받은 느낌이었다.

기분 좋게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알아버렸다충전기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것을본격적인 여행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두 번째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여행 하는 동안 핸드폰을 두 번 다시 못 켜는 줄 알았지만 이 또한 다행히 숙소 호스트가 충전기를 빌려 주어 무사히 넘어 갈 수 있었다.

행 둘째 날,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 되었다아침에 숙소 인터넷을 활용 해 핑시선에 있는 마을들을 구경하기로 했다계획은 날이 밝으면 데이터 칩을 구매 한 후 그 것으로 이 것 저것 찾아보는 것이였다하지만 이내 충동적으로 계획을 바꾸었다인터넷은 숙소에서만길은 지도와 안내판을 활용해 찾기로 말이다참으로 아날로그 여행.

여행 내내 숙소에서 나눠 준 지도를 들고 다녔다지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길을 찾을 때도 잠시 머뭇거리며 길가에 서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다가와서 길을 알려 주었다경찰 아저씨가 그랬고 지나가던 대학생이 그랬다처음엔 지도를 들고 다니는 것도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정겹고 즐겁고 감사했다.

인터넷정보만 보고 다녔다면 그날 나는 옥토푸스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구매했을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계획과 다르게 되었다카드를 구매하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점원이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이다.

출퇴근용인가요여행자인가요얼마나 머무나요?’

나는 여행자라고 대답했고 3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그랬더니 점원이 그럼 이 카드를 구매 할 필요 없어요보증금도 안돌려주고 3일이면 그냥 돈을 내고 다니는 게 더 경제적이에요.’라고 알려 주었다그래서 또 그렇게 계획이 변경 되었다.

행 셋째 날,

중정기념관(장제스 기념관)에서의 열병식을 보려고 광장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정각이 지나도 식이 거행되지 않아 의아해 하며 주변을 휙휙 돌아보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맙소사열병식은 광장이 아닌 기념관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눈 마주치지 않았으면 식이 끝날 때 까지 광장만 바라보고 있을 뻔했다생각지도 않게 매일 매일 낮선 곳에서 따듯한혹은 의외의 도움을 받았다.

행 넷째 날.

마지막은 우라이라는 지역을 찾아갔다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인 곳이다마지막 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려나 싶었는데 산을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우산이 있긴 했지만 우산으로 감당이 안 되는 비였다어쩔 수 없이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꼬치를 파는 작은 포장마차에 들어가 꼬치를 먹으며 비를 피하고 있었다꼬치를 다 먹어 가는데도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밖을 보며 비가 언제 그치나 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비 그칠 때까지 안에 들어와서 앉아있다 가도 된다고 하셨다비가 그치기까지 그 작고 좁은 곳에 한 30분 있었던 것 같다그 사이 새로운 손님이 오면 아 이 집 꼬치가 맛있다먹어봐라.’라고 하면서 이미 주인아저씨와 한 편이 되어 있었다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주인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버스는 먼저 온 순서대로 앉을 수 있었는데 좌석이 만석이 되고 좀 있다가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젊은이의 열정 반 한국의 미덕 반으로 자리를 양보해 드렸는데 대만의 할머니가 고맙다며 또 이것저것 물어보셨다.‘여행 온 거냐중정기념관(숙소 근처)가는 거면 군인이냐나도 거기서 내리니 내릴 때 알려 주겠다.’ 등등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중간쯤 왔을까할머니가 내리셨다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시더니 안에 있는 나보고 내리라고 하셨다나는 버스 안에서아니에요 저는 더 가야 해요.’라고 했지만 할머니는중정기념관을 가려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계속해서 손짓하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내가 계속해서 안 내리자 급기야는 옆에 있는 할머니들도 같이 나보고 빨리 내리라며 계속해서 나를 재촉하셨다안 내리면 정말 큰일이 날것처럼...

버스기사 아저씨도 당황하시고 나도 당황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그 곳에서 전철로 환승해서 목적지로 가려 하셨던 것이다나는 그냥 버스로 한 번에 갈 계획 이였다그 대만의 할머니는 내가 외국인이니까 혹시나 길을 모를까봐 직접 안내해 주시려고 버스 밖에서 계속해서 내려야 한다내려야한다.’ 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사람들로 채워지는 에피소드가 생겼다모든 것을 조사하고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히 준비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났던 여행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낮선 사람에게 선뜻 보일 수 있는 친절함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작은 호의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것이 여행이라면 난 작년 여름 완벽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행은 정말, ‘사람으로 완벽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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