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가 저물어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나이가 될 떄
우리집은 주택이다. 기름보일러를 떼지만 거실에 화목 난로도 놓았기 때문에 뗄감만 충분하다면 훈훈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해가 진 어느 날 집에서 분위기 있게 조용한 음악을 특고 조명도 제법 멋들어지게 켜 놓은 후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집중 하고 있는데 밖에서 차를 대는 소리가 났다. 아빠가 온것이다.
오늘은 엄마와 가게에서 주무신다고 했는데 왠일인가 했더니 차에서 절단기 하나를 내리셨다.
혼자 자는 자식이 추울까봐 창고에 쌓아 놓은 뗄감을 잘라 주러 온 것이다. 사실 그렇게 추운 날도 아니였고 집 안이 춥지도 않았고 보일러가 돌아가기 떄문에 자다가 얼어 죽을 일은 없는데 굳이 와서 나무를 잘라 주고 있었다.
아빠가 자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 아빠 얼굴이 보였다. 예전에는 젊고 잘생기고 언제나 크고 무섭고 듬직한 아빠였는데 내가 30대가 되서 아빠를 보니 예전만큼 크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주름이 보이고 조금 더 약해진 모습만 보였다. 항상 뭘 부탁해도 다 해줄 것 같은 모습,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를 잘라주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한 세대가 저물어 가는 모습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참 슬픈 감정이다. 물론 우리 아빠는 여전히 일을 하시고 만능이시고 마음은 언제나 누구보다 청춘이다.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난 이제 아빠가 그만 일했으면 좋겠어. 좀 이런 몸 쓰는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
그러자 아빠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일하느라 집중 하고 있으면 하루종일 혼자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라.'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아빠 말이 맞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누워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게 백번 나으니까.
그래도 좀 덜 일했을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일을 하는데 말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빠가 등에 짊었던 그 무게를 이제 충분히 나눌 수 있는데도 아빠는 여전히 자신이 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가 드는 것이 좋다. 20대보다 30대가 되었을 떄 더 좋았다. 내가 조금 더 자란 느낌이고 어른이 되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런데 점점 나의 세대가 성장 할 수록 부모의 세대가 쇠해지는 것을 바라 볼때 참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예전에는 이런걸 잘 몰랐는데, 나도 어느새 한 세대가 저무는 것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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